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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진주 이씨//Jinju Lee Clan

by 뿌리3030T 2026.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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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주 이씨(晋州 李氏)는 경상남도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 이군재(李君梓)로, 조선 태조에게 직간을 올렸다가 유배되어 이후 본관을 고향 진주로 삼은 것으로 전한다. 본래 경주 이씨(慶州 李氏) 계통에서 분파된 성씨이며, 조선 시대 문과에 급제한 인물과 관직에 오른 후손들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주 이씨는 4,410명으로 조사되었으며, 주요 집성촌은 평안남도 양덕군과 평안북도 창성군 등에 분포해 있었다.


2. 언어별 성씨 표기방법

한글: 진주 이씨

한자: 晋州 李氏

영어: Jinju Lee / Jinju Yi / Jinju Rhee

일본어: チンジュ リ (Chinju Ri)

중국어(간체): 晋州李氏 (Jìnzhōu Lǐshì)

독일어: Jinju Lee Familie

프랑스어: Famille Lee de Jinju


3. 기원, 유래

진주 이씨는 경주 이씨의 후손인 이군재(李君梓)가 조선 태조 시대에 이조판서를 지내다가 직간으로 인해 평안도 성천에 유배되었고, 그곳에 정착하면서 본관을 고향인 진주로 삼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군재는 경주 이씨 시조 이거명(李居明)의 18세손으로, 경주 이씨 계통에서 분파된 정통의 성씨로 평가된다. 후손들은 조선시대에 감찰, 통사랑, 어모장군, 도사 등의 관직을 지내며 가문의 명맥을 이어왔다.


4. 본관, 관향

진주(晋州)는 오늘날 경상남도 진주시를 뜻한다. 본래 백제의 거열성에서 시작되어 통일신라 때 거열주로 개칭되었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995년(성종 14)부터 진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진양도호부, 진주목 등의 명칭을 거쳐, 1949년부터 진주시로 개칭되며 오늘에 이른다. 진주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갖춘 고장으로, 진주 이씨의 본관지로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5. 시조, 중시조, 파조, 분파

시조 이군재(李君梓): 경주 이씨의 18세손이며, 조선 태조 때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직간으로 인해 유배되었고, 이후 본관을 진주로 삼음.

형 이영재(李英梓): 본관을 진주로 삼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인물로, 진주에서 거주하였던 인물.

후손 분파: 아들 영실은 감찰을 역임, 증손 의동은 통사랑에 올랐고, 그 아들 승부는 어모장군에 이르렀다. 또 다른 후손 치언은 영조 때 과거에 급제하여 도사를 지냈다.


6. 인구현황, 지역분포, 집성촌

2015년 기준 인구수: 4,410명

주요 집성촌:

  • 평안남도 양덕군 양덕읍 지수리
  • 평안북도 창성군 신창면 지풍동
  • 기타 지역 분포: 분단 이후 본관지 진주 외에도 경상도 지역과 서울 및 수도권에 일부 후손들이 흩어져 있다.

7. 문화재, 문화유적

이군재 묘역: 정확한 소재지는 북녘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초기 관직 인물의 묘역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진주 지역 내 성씨 유적: 진주성 일대 및 남강 일대에는 진주 이씨 외 다양한 진주 본관 성씨들과 관련된 유적이 함께 분포되어 있다.

유배지 성천(成川)의 유허지: 시조가 유배된 성천은 현재 북한에 위치해 있으며, 정착 당시의 유적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8. 조상의 얼을 본받아서

직언의 정신, 이군재: 진주 이씨 시조 이군재는 조선 태조에게 직언을 주저하지 않아 결국 유배를 감수했다. 이는 곧 정의와 올바름을 실천하는 충정의 상징이었다.

가문의 명예를 지킨 영실: 감찰로 봉직했던 아들 영실은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공정함과 청렴을 갖춘 관리로 이름을 떨쳤다.

외세에 대비한 장군 승부: 어모장군 승부는 국난을 대비하며 무예를 갈고닦아, 가문의 무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록된다.

과거 급제를 통한 가문의 등불, 치언: 조선 영조 때 과거에 급제하여 도사에 오른 치언은 학문과 실력을 겸비한 후손으로, 가문의 긍지를 드높였다.

잊히지 않는 형제애: 시조 이군재가 고향 진주에 있는 형 이영재를 생각하며 본관을 진주로 삼은 일화는 형제간의 깊은 정을 보여주는 귀감이다.


9. 상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https://blog.naver.com/hkpark1408/223035177380



11. English Summary

The Jinju Lee Clan (Jinju I/Lee/Rhee) originates from Jinju, a historic city in South Gyeongsang Province, Korea. The progenitor of the Jinju Lee family was Yi Gun-jae (李君梓), an 18th-generation descendant of Yi Geo-myeong (李居明), the founding ancestor of the Gyeongju Lee Clan. Yi Gun-jae served as the Minister of Personnel (Ijo Panseo)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Known for his integrity and upright character, he was exiled to Seongcheon after offering forthright counsel to King Taejo. It is said that while in exile, he missed his brother Yi Yeong-jae, who lived in Jinju, and thus designated Jinju as the clan's bon-gwan (ancestral seat).

The clan produced several notable descendants: Yi Yeong-sil served as a royal inspector (Gamchal), Yi Ui-dong became a Tongsa-rang official, and Yi Seung-bu, a son of Yi Ui-dong, was appointed a general under the title Eomo Janggun. Another descendant, Yi Chi-eon, passed the state civil service exam (Gwageo)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and served as a Dosan official.

According to the 2015 South Korean census, the Jinju Lee clan had a population of 4,410. The clan's main settlements were historically in Yangdeok County in South Pyongan Province and Changseong County in North Pyongan Province, both now located in North Korea.

The surname Lee (李) is one of the most common in Korea and has many sub-clans, of which Jinju Lee is a relatively smaller and less widely spread branch. Nevertheless, it is a lineage marked by loyalty, integrity, and scholarly achievement, preserving its identity through history despite wars, partitions, and modern societal changes.


12. 참고자료

① 나무위키 "이(성씨)", "진주 이씨" 항목

② 위키백과 "Korean surname Lee", "Jinju Lee clan" 항목

③ 『뿌리를 찾아서』 블로그 및 티스토리 문헌

④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2015년)

⑤ 성씨정보 종합대백과

⑥ 한국고전종합DB

⑦ 『한국성씨총람』

⑧ 조선왕조실록


13. 키워드(Keyword)

진주이씨, 진주이군재, 진주본관, 경주이씨분파, 조선이조판서, 이군자, 한국성씨, 본관성씨, 한국족보, KoreanGenealogy, JinjuLeeClan, YiGunjae, KoreanCl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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