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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여양/예양/홍주/경주/신광 진씨//Yeoyang Jin Clan

by 뿌리3030T 2026.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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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양 진씨(驪陽 陳氏)는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를 관향(貫鄕)으로 하는 한국 진씨(陳氏)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본관이다. 여양(驪陽)은 고려시대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여양현(驪陽縣)의 지명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늘날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로 비정된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인구는 110,403명으로 집계되었으나, 대종회 측에서는 약 45만 명 내외로 추산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문신, 무신, 학자, 절의지사, 공신을 배출하여 명문(名門)의 전통을 이어왔다.

특히 고려 인종조의 무신 진총후(陳寵厚)를 시조로 삼고, 그의 아들 진준(陳俊)이 명신으로 이름을 떨치며 가문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이후 상계 5파를 중심으로 중계와 하계로 분파되어 전국 각지에 뿌리를 내렸다.


2. 언어별 성씨 표기방법

① 한글: 여양 진씨

② 한자: 驪陽 陳氏

③ 영어: Yeoyang Jin Clan

④ 일어: ヨヤン・チン氏

⑤ 중국어(간자): 骊阳陈氏

⑥ 독일어: Yeoyang-Jin-Sippe

⑦ 프랑스어: Clan Jin de Yeoyang


3. 기원, 유래

여양 진씨의 시조는 고려 예종과 인종 연간에 활약한 무신 진총후(陳寵厚)이다. 《여양진씨대동보》에 따르면 그는 예종조에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냈고, 1126년 인종 4년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상장군(上將軍)에 오르고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다.

여양을 식읍으로 하사받음으로써 후손들은 이를 본관으로 삼았다. 다만 정사인 《고려사》에는 그의 이름이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총후가 본명이 아닌 왕이 하사한 이름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아들 진준(陳俊)은 무신정변의 격변기 속에서 문신들의 무차별 학살을 만류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가 원한을 가진 자는 소수에 불과하니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하였다. 《고려사》는 이를 두고 “음덕이 있으니 후손이 반드시 창성한다”고 기록하였다. 실제로 그의 자손 다수가 과거에 급제하고 고위관직에 오르며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또한 여양 진씨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하나는 북송 복주 출신 진수(陳琇)의 후손설이며, 다른 하나는 삼국시대 백제의 진씨 토착설이다. 백제 유민 진법자(陳法子)의 묘지명이 발견됨으로써 삼국시대에도 진씨가 존재했음이 확인되어 토착성씨설에 무게가 실리기도 한다.

이처럼 여양 진씨는 중국계 이주설과 토착설이 병존하나, 고려 인종조의 공신 진총후를 시조로 삼아 계대를 이어온 점은 분명하다.


4. 본관, 관향

여양(驪陽)은 본래 백제 사척량현(沙尺良縣) 또는 사라현(沙羅縣)이라 하였으며, 신라 경덕왕 때 신량현(新良縣)으로 개칭되어 결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여양현으로 개칭되었고, 현종 9년(1018)에 홍주에 속하였다. 명종 원년에는 양광도 청주목에 속했으며, 조선 태조 4년(1395)에 폐현되어 홍주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홍주군과 결성군이 통합되어 홍성군이 되었고, 오늘날 장곡면 일대가 여양의 옛 터로 전한다.

여양은 지리적으로 충청 내륙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농업과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지역적 기반 위에서 여양 진씨는 충청권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5. 시조, 중시조, 파조, 분파

① 시조

시조는 고려 인종조의 무신 진총후(陳寵厚)이다.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고 여양군에 봉해져 본관의 기초를 세웠다.

② 중시조

중시조는 그의 아들 진준(陳俊)이다. 참지정사·판병부사를 역임하였으며, 무신정변기 인명을 구한 덕장으로 칭송받았다.

③ 파조

증손대에 이르러 다섯 갈래의 상계 5파가 형성되었다.

  • 시중공파: 문하시중 진담(陳湛)
  • 어사공파: 어사대부 진식(陳湜)
  • 예빈경파: 예빈경 진온(陳溫)
  • 매호공파: 지공주사 진화(陳澕)
  • 전농공파: 판전농시사 진택(陳澤)

④ 분파의 확산

상계 5파에서 다시 중계와 하계로 갈라졌으며, 신광·강릉·삼척·나주·진산 등 여러 본관이 합보하여 동원분파임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 무과 급제자 다수를 배출하여 명문가로 자리매김하였다.


6. 인구현황, 지역분포, 집성촌

① 인구

2000년 97,372명, 2015년 110,403명으로 증가하였다.

② 지역분포

충청권을 중심으로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전역에 분포한다.

③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이천리,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용연리, 고창군,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신학리, 곡성군 고달면 목동리, 강원도 횡성군 청룡리,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 합천군 청덕면 소례리,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등지에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7. 문화재, 문화유적

① 여양현지

여양의 옛 터와 관련된 유적은 홍성군 장곡면 일대에 전한다.

② 충신·효자 정려

조선시대 충신과 효자를 기리는 정려각이 각지 집성촌에 세워졌다.

③ 종중 사우와 재실

각 파별로 사우와 재실을 세워 선조를 배향하고 제향을 이어오고 있다.

④ 족보와 대동보

《여양진씨대동보》는 가문의 역사와 계대를 정리한 대표 문헌이다.


8. 조상의 얼을 본받아서

① 덕장의 길을 걸은 진준

진준(陳俊)은 무신정변의 참혹한 시기에도 인명을 중히 여겼다. 권력의 격랑 속에서 복수와 증오를 경계하고 정의와 절제를 선택하였다. 그의 결단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인간 존엄을 지키려는 도덕적 용기였다. 후손은 여기서 공동체를 살리는 지도자의 품격을 배운다. 힘보다 덕이 오래간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② 공직자의 모범 진중성

진중성(陳仲誠)은 조선 초기 사헌부와 형조를 거치며 청렴한 관료로 이름을 남겼다. 그는 공정한 법 집행과 백성 보호에 힘썼고, 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공직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공공의 신뢰 위에 서야 한다는 가치를 일깨워 준다.

③ 절의의 선비 진복창

진복창(陳復昌)은 별시문과 장원 급제 후 대사헌에 올랐으나 권신의 전횡에 굴하지 않았다. 결국 파직과 유배를 겪었으나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권력 앞에서도 양심을 지키는 선비정신은 여양 진씨 가문의 정신적 유산이다.

④ 충무의 기상 진무성

임진왜란 때 활약한 진무성(陳武晟)은 전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아끼지 않은 그의 헌신은 가문을 넘어 민족의 자산이다. 후손은 위기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용기를 배운다.

⑤ 예술혼을 꽃피운 진채선

판소리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전하는 진채선(陳彩仙)은 조선 후기 예술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전통 예술의 영역을 넓히며 여성 예인의 지평을 확장하였다. 문화와 예술 역시 가문의 긍지임을 보여준다.


9. 상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https://blog.naver.com/hkpark1408/223035177380



11. English Summary

The Yeoyang Jin Clan (驪陽 陳氏) is the largest branch among Korean clans bearing the surname Jin (陳). Its ancestral seat, Yeoyang, corresponds to a former county in present-day Janggok-myeon, Hongseong-gun, Chungcheongnam-do.

The founding ancestor in Korea is General Jin Chong-hu (陳寵厚), who served during the reigns of King Yejong and King Injong of Goryeo. He is said to have suppressed the rebellion of Yi Ja-gyeom in 1126 and was granted the title Lord of Yeoyang. His son, Jin Jun (陳俊), became a high-ranking official and is remembered for preventing mass killings during the military coup, earning praise in the Goryeo chronicles.

Over generations, the clan divided into five principal branches: the Sijung-gong, Eosa-gong, Yebingyeong-gong, Maeho-gong, and Jeonnong-gong lines. Numerous descendants succeeded in the civil and military examinations of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By 2015, the population of the clan reached over 110,000 according to official statistics, though clan records estimate a much larger number. Clan villages are widely distributed across central and southern Korea.

Throughout history, the Yeoyang Jin Clan has embodied loyalty, scholarship, integrity, and courage. Their legacy continues to inspire descendants to uphold moral virtue, public service, and cultural contribution.


12. 참고자료

① 나무위키의 해당 성씨 항목

② 위키백과의 해당 성씨 항목

③ 여양진씨대동보

④ 조선씨족통보

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3. 키워드(Keyword)

여양진씨, 진총후, 진준, 여양현, 홍성장곡면, 시중공파, 진복창, 진무성, 한국진씨, 충청도본관, YeoyangJinClan, KoreanJinClan, Goryeo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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