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경주 최씨(慶州 崔氏) 또는 월성 최씨(月城 崔氏)는 경상북도 경주시(慶州市)를 관향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명문 고성(古姓)이다. 신라 6성(六姓) 가운데 하나로, 사로국(斯盧國) 건국 초기의 6촌 촌장 중 돌산고허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삼고, 그의 24세손인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한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경주 최씨 945,005명, 월성 최씨 82,843명으로 합계 1,027,848명에 달하여 전국 성씨 본관별 순위 7위를 차지한다. 전체 최씨 인구의 약 40%를 점유하는 거족으로, 약 2,0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이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 명문 가문이다.
특히 경주 교동의 최부자 가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6훈(六訓)과 6연(六然)의 가훈을 통해 권력과 부를 절제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2. 언어별 성씨 표기방법
① 한글: 경주 최씨 / 월성 최씨
② 한자: 慶州 崔氏 / 月城 崔氏
③ 영어: Gyeongju Choi Clan / Wolseong Choi Clan
④ 일어: キョンジュ・チェ氏 / ゲッソン・チェ氏
⑤ 중국어(간자): 庆州崔氏 / 月城崔氏
⑥ 독일어: Gyeongju-Choi-Sippe
⑦ 프랑스어: Clan Choi de Gyeongju
3. 기원, 유래
경주 최씨의 원조는 신라 건국 이전 사로국의 6촌 가운데 돌산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그는 신라 초기 지배세력의 일원으로 전해지며, 최씨 성의 시원으로 숭앙된다.
중시조 최치원(崔致遠)은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자 학자로, 868년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다.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천하에 문명을 떨쳤으며, 귀국 후 신라의 개혁을 위하여 「시무십여조」를 상소하였다.
그는 성리학적 사유와 국제적 시야를 겸비한 지식인이었으며, 한국 한문학의 조종으로 평가된다. 후대에 고려 현종은 그를 문창후(文昌侯)로 추증하였고, 조선에서도 동방 이학의 시조로 높이 기렸다.
4. 본관, 관향
본관은 경주시(慶州市)이다. 경주는 기원전 57년 6촌이 연합하여 서라벌을 형성한 이래, 계림·사로·신라로 국호가 변천하였고, 935년 고려 태조 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등장하였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서 정치·문화·불교·학문의 중심지였으며, 경주 최씨는 이 지역을 세거지로 삼아 명문거족의 기반을 다졌다. 월성은 신라 왕궁이 위치한 지명으로, 월성 최씨라는 별칭은 같은 계통임을 뜻한다.
5. 시조, 중시조, 파조, 분파
① 시조
원조는 신라 6촌장 중 한 사람인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신라 초기 지배층의 일원으로, 최씨 성의 기원을 형성하였다.
② 중시조
중시조는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관료인 최치원(崔致遠)이다. 그는 당나라 유학과 국제적 문명을 통해 신라의 위상을 높였고, 문학·사상·정치개혁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③ 파조
주요 파조는 다음과 같다.
관가정공파 - 최청(崔淸)
광정공파 - 최단(崔鄲)
정랑공파 - 최호(崔灝)
사성공파 - 최예(崔汭)
화숙공파 - 최현우(崔玄祐)
충렬공파 - 최광위(崔光位)
④ 분파
경주 최씨는 총 27파로 분파되었으며, 그 중 위 6대파가 주축을 이룬다. 대동보에 따르면 대부분이 최치원의 11세손, 12세손에서 갈라졌다. 각 파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문과 급제자, 공신, 청백리, 무장 등을 배출하며 가문의 위상을 공고히 하였다.
6. 인구현황, 지역분포, 집성촌
① 인구
1985년 876,732명, 2000년 976,820명, 2015년 1,027,848명으로 꾸준히 증가하였다.
② 지역분포
전국적으로 분포하나 특히 경상북도 경주시·포항시, 경상남도 함양군·합천군, 전라남도 담양군·신안군, 경기도 포천시, 평안도·함경도 일대에도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③ 집성촌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안강읍, 내남면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합천군 봉산면
전라북도 익산시, 무주군
광주광역시 남구
함경남도 함주군, 평안남도 성천군 등
7. 문화재, 문화유적
① 경주 교동 최부자 고택
조선 후기 300년간 만석지기를 유지한 가문으로, 6훈과 6연의 가훈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
② 관가정 유적
관가정공파의 유래지로, 최청(崔淸)의 절의를 기리는 유적이다.
③ 동학 관련 유적
동학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용담정과 귀미산 일대는 경주 최씨의 정신적 유산이다.
④ 면암 관련 유적
항일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의 유허지와 기념비는 가문의 충절을 상징한다.
8. 조상의 얼을 본받아서
① 학문의 정신 - 최치원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건너가 빈공과에 급제하고, 「토황소격문」으로 문명을 떨쳤다. 그러나 그는 명성과 벼슬에 안주하지 않고 귀국하여 신라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시무십여조를 통해 민생 안정과 제도 개혁을 주장한 그의 정신은 현실 참여적 지식인의 모범이다. 오늘날 후손들은 그의 학문적 깊이와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본받아 국제적 시야와 도덕적 책임을 겸비한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
② 절의의 상징 - 최청
관가정공파의 파조 최청은 고려가 멸망하자 조선의 벼슬을 사양하고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켰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나 끝내 은거하였다. 묘비명에 고려 관직을 새기라는 유언은 충절의 상징이다. 후손들은 권세보다 신념을 중시하는 그의 삶을 통해 원칙과 명예의 가치를 배운다.
③ 구국의 의지 - 최진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한 최진립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 전투에서 장렬히 순절하였다. 화살이 온몸에 꽂힌 채 쓰러졌다는 기록은 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국난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책임과 희생의 정신은 오늘날 공동체 수호의 가치로 계승되어야 한다.
④ 개혁과 민본 - 최승로
고려 성종 때 시무28조를 올린 최승로(崔承老)는 군제 개편, 불교 행사 절제, 지방관제 정비 등 국가 기틀을 확립하였다. 그는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제도 개혁으로 응답한 정책가였다. 후손들은 그의 실사구시 정신을 본받아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⑤ 항일 충절 - 최익현
면암 최익현은 을사늑약 체결 후 의병을 일으켜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다. 대마도에서 단식 순국한 그의 삶은 충의의 극치였다. 백발의 노학자가 의기를 들었던 모습은 민족 자존의 상징이다. 후손들은 그의 불굴의 기개를 이어 정의와 자주를 수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9. 상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11. English Summary
The Gyeongju Choi Clan, also known as the Wolseong Choi Clan, is one of the most distinguished and historically enduring Korean clans. Originating from Gyeongju in North Gyeongsang Province, the clan traces its legendary ancestry to Soboldori, one of the six village leaders who founded the early Silla state. The recognized progenitor of the clan’s historical lineage is Choi Chi-won (857-?), a renowned scholar-official of late Silla.
Choi Chi-won studied in Tang China, passed the imperial examination, and gained fame for his literary work, particularly the “Proclamation Against Huang Chao.” Upon returning to Silla, he attempted political reforms but eventually retired due to aristocratic resistance. He is honored as a pioneer of Korean Confucian scholarship.
Throughout Goryeo and Joseon, the clan produced numerous scholars, officials, generals, reformers, and patriots. Choi Seung-ro contributed to Goryeo state-building with his Twenty-Eight Reform Proposals. Choi Cheong exemplified loyalty during dynastic transition. General Choi Jin-rip defended the nation during foreign invasions. In modern times, Choi Ik-hyeon became a symbol of anti-Japanese resistance.
As of 2015, the clan numbered over one million members, ranking seventh among Korean clans by population. With deep roots in Korean history, the Gyeongju Choi Clan embodies scholarship, loyalty, reformist spirit, and national devotion, inspiring descendants to uphold integrity and public responsibility.
12. 참고자료
① 나무위키의 경주 최씨 항목
② 위키백과의 경주 최씨 항목
③ 경주최씨 대동보
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⑤ 부천족보전문도서관 자료
13. 키워드(Keyword)
경주최씨, 월성최씨, 소벌도리, 최치원, 최승로, 최청, 최진립, 최익현, 신라6성, 경주교동최부자, GyeongjuChoiClan, WolseongChoiClan, ChoiChi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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