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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선산 이씨//Seonsan Lee Clan

by 뿌리3030T 2026.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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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산 이씨(善山 李氏)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전통 성씨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 대에 활동한 광평대군(光平大君)의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으로 삼으면서 이 계통이 성립되었다고 알려진다. 광평대군은 조선 제4대 국왕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로, 뛰어난 학문과 덕망으로 조선 초 문치주의의 꽃을 피우는 데 기여한 왕자였다.

선산 이씨는 광평대군의 자손이 후에 분관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현재에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으나 조상의 근거지였던 경북 선산 지역에 많은 후손이 남아 있다. 본래 '광평 이씨'로 불리기도 했으며, 광평대군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조선 후기부터는 '선산 이씨'라는 본관 명칭이 정착되어 후손들 사이에서 통용되었고, 문중에서는 종친회 중심의 결속과 문중행사로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선산 이씨는 문중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선 시대와 근현대에 걸쳐 학문과 정치, 예술, 종교 분야 등에서 다양한 인재를 배출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유학과 관직, 근대기에는 개화사상과 신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이들이 많아, 후손들 사이에서도 조상의 뜻을 기리며 교육과 문화 계승에 힘쓰는 전통이 강하다.


2. 언어별 성씨 표기방법

  • 한글: 선산 이씨
  • 한자: 善山 李氏
  • 영어: Seonsan Lee Clan, Lee of Seonsan
  • 일어: ソンサン・イし (ソンサン李氏)
  • 중국어(간체): 善山李氏 (Shànshān Lǐ Shì)
  • 독일어: Seonsan-I Sippe
  • 프랑스어: Famille Lee de Seonsan

3. 기원, 유래

선산 이씨는 조선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이여(李璵)의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으로 삼으면서 유래되었다. 광평대군은 세종의 아들 중에서도 문사적 재능이 뛰어났고, 조정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하던 중 1444년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의 자손 중 일부는 이후 선산 지역에서 세거하며 독립적인 문중을 형성하였고, 본관을 선산으로 삼아 선산 이씨라 칭하였다.

기록상으로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광평대군의 후손 중 일부가 '선산'을 본관으로 사용하였다는 정황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 후기의 족보나 지방지(地方誌) 등에도 등장하며, 구체적인 파계가 광평대군파임을 명시한다. 조선 왕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선산 이씨는 왕족계의 일원으로 문중의 위엄을 갖추었으나, 그 규모는 크지 않아 귀족화보다는 유학적 전통을 중심으로 한 교육 계승에 초점을 맞추었다.

 


4. 본관, 관향

선산(善山)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대를 가리킨다. 선산은 조선 시대에 선산도호부로 승격될 만큼 중요한 행정 중심지였으며, 이 지역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걸쳐 유학과 학문의 중심지로 이름을 알렸다.

광평대군의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관향(貫鄕)을 선산으로 정하였으며, 지역 중심 성씨로 자리 잡았다. 특히 선산 지역에는 조선 후기부터 이씨 문중이 중심이 된 마을들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집성촌은 오늘날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5. 시조, 중시조, 파조, 분파

  • 시조: 공식적인 시조는 조선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 이여(李璵)이다. 광평대군은 본래 전주 이씨 왕족의 일원이지만, 그의 후손이 선산에 정착하여 본관을 분관하면서 선산 이씨의 실질적 시조로 간주된다.
  • 중시조: 광평대군의 손자나 증손대 이후 인물 중 선산에 뿌리를 내린 이들이 중시조로 존숭되나, 특정 인물을 지목한 문중 정설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문중의 구심점은 광평대군 후손이라는 정체성에 기초한다.
  • 파조 및 분파: 광평대군의 후손 중 지역적 기반에 따라 선산파, 안동파, 서울파, 대구파 등으로 분파되었으며, 각 파는 세거지 중심으로 문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파조는 각각 해당 지역에 세거한 최초 정착자를 중심으로 파계가 나뉘며, 비교적 근대에 분파가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6. 인구현황, 지역분포, 집성촌

선산 이씨는 소수 성씨에 속하며, 2020년대 기준으로 약 수천 명 규모의 인구가 추산된다. 광의의 전주 이씨에서 분파된 성씨이지만, 독립된 본관으로 선산을 유지하고 있는 인구는 전국적으로 분산되어 있다.

  • 주요 지역분포: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본관 지역으로 가장 많은 후손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문중 사당과 묘소, 유적지 등이 있다.
  • 경상북도 김천시, 상주시: 선산과 인접한 지역으로 문중 후손들의 이주가 많았던 곳이다.
  • 서울특별시,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등 대도시권: 현대 이후 도시로 이주한 문중 구성원들이 많다.
  • 집성촌:
  • 선산읍 도개면 일대: 선산 이씨의 중심 집성촌이며, 정기적인 제향과 문중회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 경북 성주군, 칠곡군 일부 면지역: 광평대군의 후손이 이주하여 뿌리내린 집성촌이 전해진다.

7. 문화재, 문화유적

선산 이씨 문중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장소들이 있다.

  • 광평대군 묘역: 본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위치하였으며, 조선왕릉의 하나로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선산 이씨는 이 묘역을 중심으로 조상의 숭조사상을 계승한다.
  • 선산향교 및 지역 유림 활동지: 후손 중 다수가 유학에 정진하며 향교 운영, 서원 설립 등에 기여하였다. 특히 19세기에는 서당 교육을 통해 향촌 교육에 큰 역할을 하였다.
  • 문중 사당 및 재실: 선산 지역에는 선산 이씨의 문중 재실이 남아 있으며, 제향과 의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8. 조상의 얼을 본받아서 (약 550자 × 5)

학문을 숭상한 조상의 정신

광평대군의 자손이라는 뿌리를 가진 선산 이씨는 대대로 학문을 중요시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각 파별로 서당과 서원을 세워 지역 청소년들을 교육하였으며,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재지사(在地士) 양성에도 힘썼다. 학문과 도덕을 우선시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자손들의 교육열로 이어지고 있다.

충절의 전통을 이어받다

선산 이씨 후손 중에는 조선 말기 의병활동이나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에 참여한 인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조상의 가르침을 따라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으며, 일제에 저항하여 마을 서당에서 민족교육을 지속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선산 이씨의 충절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종친회의 연대의식

선산 이씨는 비록 인구는 많지 않지만, 종친회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매년 음력 정월과 10월에 조상의 제향을 올리며,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혈족의 정체성과 전통을 되새긴다. 특히 청년 종친회는 현대 사회에 걸맞는 방식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여 역사와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문중 장학 사업의 실천

1990년대 이후부터 선산 이씨 일부 문중에서는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후손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조상의 학문 존중 정신을 실천하며, 가문의 이름을 빛낼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장학금 수혜자들은 매년 종친회 행사에 참석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며 문중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종가의 역할과 제례의 계승

선산 이씨의 종가에서는 매년 음력 시조제, 중시조제, 광평대군 추모제를 엄숙하게 거행하며 조상의 은혜를 기리고 있다. 특히 종손은 문중의 대표로서 제례를 주관하고, 전통 예법에 따라 후손을 인도한다. 이는 선산 이씨가 조상 숭배와 가문 의식을 계승하는 방식으로, 현대사회에서도 고귀한 전통으로 남아 있다.


9. 상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https://blog.naver.com/hkpark1408/223035177380



11. English Summary

The Seonsan Lee Clan (선산 이씨) is a Korean family clan with its bon-gwan (ancestral seat) in Seonsan, today a part of Gumi City in North Gyeongsang Province. The origin of this clan traces back to Prince Gwangpyeong (광평대군 李璵), the fifth son of King Sejong, one of the most revered monarchs in Korean history. Although Prince Gwangpyeong died young, his descendants settled in Seonsan and began identifying themselves by that region, thus forming the Seonsan Lee lineage.

The clan, though smaller in numbers compared to larger Lee clans like Jeonju Lee or Gyeongju Lee, takes pride in its royal origin. Most of the family’s activities and traditions center around ancestral reverence, Confucian scholarship, and maintaining the dignity of their heritage. The clan's identity is deeply tied to Korean royal history, especially the early Joseon dynasty.

In modern times, the Seonsan Lee clan is scattered across South Korea, with significant numbers in Gumi, Kimcheon, and Daegu, and also urban centers such as Seoul and Busan. Despite being small in population, the clan maintains active Jongchin (종친회) or family associations, conducts regular ancestral rites, and runs scholarship foundations to support the younger generation.

The clan’s cultural contributions include the preservation of historical sites, traditional rituals, and publications related to their genealogical records. Their legacy continues through annual gatherings, educational support, and pride in their ancestral values of loyalty, scholarship, and public service.


12. 참고자료

① 나무위키 '이(성씨)', '전주 이씨', '광평대군' 항목

② 위키백과 '이씨', '광평대군', '조선왕족' 관련 항목

③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④ 경북 구미시 선산읍 문화재 안내문

⑤ 선산 이씨 문중 종친회 자료 및 블로그 정리 내용


13. 키워드(Keyword)

선산이씨, 광평대군, 조선왕자, 전주이씨분파, 구미성씨, 경북성씨, 이씨본관, 한국성씨, 성씨문화, 종친회활동, SeonsanLee, KoreanGenealogy, JoseonRoya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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