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청해 이씨(靑海 李氏)는 함경남도 북청군 청해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등장한 여진족계 귀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말 원나라 말기의 혼란기에 귀화한 이지란(李之蘭)으로, 본래는 여진족 출신 무장이었다. 그는 조선의 개국에 기여한 개국공신이자, 조선왕조 초기에 중대한 역할을 한 인물로 기록된다.
2000년 기준 인구는 12,002명으로 성씨 순위 329위에 해당하며, 북청을 중심으로 출발한 이 성씨는 시간이 지나며 수도권과 전국 각지에 분포하게 되었다. 특히 서울특별시 용산구, 경기도 남양주·오산·포천·용인·의정부, 강원도 이천, 충청남도 보령, 전라북도 임실 등지에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청해 이씨는 함경도 지역을 본관으로 한 성씨 중 유일하게 인구가 만 명 이상 되는 성씨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2. 언어별 성씨 표기방법
① 한글: 청해 이씨
② 한자: 靑海 李氏
③ 영어: Cheonghae Yi Clan
④ 일어: チョンヘ・イし(青海李氏)
⑤ 중국어(간자체): 青海李氏
⑥ 독일어: Cheonghae Yi Sippe
⑦ 프랑스어: Clan Yi de Cheonghae
3. 기원, 유래
청해 이씨의 시조 이지란(李之蘭)은 1331년(고려 충혜왕 1년) 여진족 금패천호 아라부카(阿羅不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쿠란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 또는 퉁두란(퉁豆蘭)으로 전한다. 이지란은 아버지의 관직인 천호(千戶)를 이어받아 지역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1371년 고려 공민왕 대에 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고려에 귀화하였다.
귀화 후 함경남도 북청에 정착하고 고려 무신 이성계를 만나 그의 부하가 되었으며, 성씨도 여진 성씨인 '퉁(通)'에서 이성계의 '이(李)' 성으로 바꾸었다. 이지란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일등 공신으로 참여하며 '청해백(靑海伯)'에 봉해졌으며, 후에 청해군으로 개봉되었다. 그러나 조선 초 정치적 격변 속에서 권세보다는 은둔을 택해 고향 청해로 돌아가 생을 마감했다.
4. 본관, 관향
청해(靑海)는 함경남도 북청군 청해리 일대를 가리킨다. 본래 이 지역은 고구려, 발해,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동북방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698년 발해의 남경 남해부가 설치된 이후, 고려시대에는 쌍성총관부, 조선 초에는 청주부로 불리다 다시 북청으로 개칭되었고, 1895년 북청군으로 개편되어 함경남도에 소속되었다.
'청해'라는 이름은 본래 고구려·발해 시대에 사용되던 명칭으로, 시조 이지란이 봉해진 작위인 청해백(靑海伯)의 이름에도 등장하며 청해 이씨 가문의 상징적 본관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5. 시조, 중시조, 파조, 분파
① 시조: 이지란(李之蘭)
여진족 출신으로 고려로 귀화한 후, 이성계를 따라 조선 건국에 이바지하고 청해백에 봉해진 개국공신이다.
② 중시조: 이화영(李和英)
이지란의 아들로 세종 초 우군부 판사를 지낸 인물이다.
③ 파조: 이인기(李麟奇)
이지란의 7세손으로 선조 대에 중추부동지사,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청해 이씨의 송계공파를 중심으로 분파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④ 기타 분파 인물
- 이중로: 이인기의 아들, 무과 급제
- 이핵: 중추부첨지사
- 이수민: 삼도수군통제사
6. 인구현황, 지역분포, 집성촌
① 인구현황
2000년 기준으로 청해 이씨는 12,002명이었으며, 국내 성씨 인구 순위 329위에 해당한다. 이는 함경도를 본관으로 한 성씨 중 가장 많은 수치이다.
② 지역분포 및 집성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동빙고동
- 경기도:
-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 오산시 가수동
- 의정부시 가능동
- 강원도: 이천군 용포면 월암리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소송리
-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 평안남도: 양덕군 양덕면 인평리 외 봉계리, 정옥리
-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동중리, 속후면 서도리, 하천리
이외에도 한지면 빙고리(고양), 오산읍 가수리(화성) 등지에도 연고가 확인된다.
7. 문화재, 문화유적
청해 이씨는 시조 이지란이 조선 개국에 기여한 종묘배향공신이라는 점에서 그 업적 자체가 정치사와 문화사에서 기념비적 가치를 가진다. 이지란의 활동 무대였던 북청 일대는 오늘날 문화재로 보존되지 못했으나, 역사 문헌 속에서 그의 행적은 뚜렷이 남아 있다.
또한 청해 이씨 관련 후손들이 활약한 중추부, 삼도수군통제사, 판우군부사 등의 고관직은 조선의 문무제도를 대표하는 위치로, 그들이 남긴 기록과 업적은 조선 시대 문헌과 관직록에 실려 후손들에게 큰 유산이 되었다.
8. 조상의 얼을 본받아서
① 용맹과 충절의 상징, 이지란
외지에서 귀화한 이지란은 낯선 땅에서 자신과 후손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는 단지 전사로서가 아니라, 이성계를 도와 나라를 세우고 초대 공신이 되어 자신의 이름과 후손의 기반을 마련했다.
② 관직에 오른 후손들
이지란의 후손들은 세대를 이어 관직에 오르며 학문과 무예를 쌓았고, 조선시대 내내 나라의 중심에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청렴함과 실력을 갖춘 인물들이 후대에 귀감이 되었다.
③ 도시로 향한 이주와 정착
물장수로 서울에 터전을 잡은 청해 이씨 후손들은 근면성과 공동체 정신으로 서빙고동과 동빙고동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형성하며, 도심 속에서도 뿌리를 지켰다.
④ 전국의 집성촌, 분포와 연대
경기, 강원, 충청, 전라, 평안, 함경 각지에 흩어진 청해 이씨의 집성촌은 조상의 개척정신을 이어온 후손들의 노력이 만든 역사적 성과라 할 수 있다.
⑤ 희귀한 본관의 자부심
청해라는 본관은 흔치 않은 만큼, 후손들은 본관에 대한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다. 조상의 개국공신 정신과 귀화인의 도전정신은 오늘날 글로벌화 시대에 모범이 될 만하다.
9. 상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11. English Summary
The Cheonghae Yi Clan (靑海 李氏) traces its origins to Yi Ji-ran (李之蘭), a former Jurchen (Yeojin) tribal leader who became a naturalized Korean during the late Goryeo Dynasty. His original name was Quranturantimur, and he was the son of Arabuka, a commander holding the Jurchen title of Golden Plaque Thousand Households (金牌千戶).
In 1371, Yi Ji-ran led his followers into Korea and pledged allegiance to General Yi Seong-gye, the futur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Upon naturalization, he adopted the surname "Yi" and was later granted the title Count of Cheonghae (靑海伯) for his meritorious service in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dynasty.
Yi Ji-ran’s descendants continued to serve in high positions throughout Joseon, including military and administrative posts. Notable among them were his son Yi Hwa-yeong, and seventh-generation descendant Yi In-gi, who was honored posthumously as Left Chancellor (좌찬성). Many of his descendants passed the civil and military examinations, reflecting the family's continued scholarly and martial legacy.
As of the year 2000, the clan numbered approximately 12,002 members, with a significant presence in Seoul (Yongsan-gu) and Gyeonggi Province, including Yongin, Pocheon, Osan, Namyangju, and Uijeongbu. Historically, Cheonghae (now part of Bukcheong County, Hamgyeongnam-do) served as the clan’s bon-gwan, or ancestral seat, making the Cheonghae Yi Clan unique among Korean lineages for its rare northern origin.
12. 참고자료
① 나무위키: 청해 이씨 항목
② 위키백과: 청해 이씨 항목
③ 박기현,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역사의아침, 2007
④ 청해이씨 종친회 홈페이지
⑤ 블로그 hkpark1408의 관련 자료
13. 키워드(Keyword)
청해이씨, 이지란, 조선개국공신, 북청군, 여진족귀화성씨, 송계공파, 청해백, 조선문무관료, 본관성씨, 집성촌, CheonghaeYiClan, YiJiran, KoreanGenea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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