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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밀양 최씨//Miryang Choe Clan

by 뿌리3030T 2026.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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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양 최씨(密陽 崔氏)는 경상북도 밀양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대종(大宗)인 경주 최씨(慶州 崔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으로 전한다. 최씨(崔氏)는 신라 6부 촌장 가운데 고허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시조로 하며, 이후 통일신라 말기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삼는 거대 성씨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밀양 최씨 역시 최씨 가문의 한 갈래로 형성되었다.

2015년 통계 기준 밀양 최씨는 4,743명으로 집계되며, 규모는 크지 않으나 조선 후기 정치적 격랑 속에서 절의와 충의를 지킨 가문으로 평가된다. 본관인 밀양은 영남 내륙의 요충지로서,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간직한 지역이다.


2. 언어별 성씨 표기방법

① 한글: 밀양 최씨

② 한자: 密陽 崔氏

③ 영어: Miryang Choe Clan 또는 Miryang Choi Clan

④ 일어: 密陽崔氏(ミリャン・チェ氏)

⑤ 중국어(간자): 密阳崔氏

⑥ 독일어: Miryang-Choe-Sippe

⑦ 프랑스어: Clan Choe de Miryang


3. 기원, 유래

밀양 최씨는 한국 고유 성씨인 최씨(崔氏)의 한 분파이다. 최씨의 연원은 신라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고허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리 이사금이 사로 6촌을 부(部)로 개편하며 사성(賜姓)하였고, 고허촌에 내린 성이 곧 최(崔)였다.

이후 신라 말기 대학자 최치원(崔致遠)이 등장하면서 최씨는 학문과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밀양 최씨는 이러한 경주 최씨 계통에서 분적된 것으로 알려지나, 정확한 분관 시점과 초기 세계(世系)는 문헌 고증이 충분하지 않다.

족보인 「밀양최씨계해보(密陽崔氏癸亥譜)」에 따르면, 문창후(文昌侯) 최치원의 후손인 화숙공(和淑公) 최현우(崔玄祐)의 15세손으로 기록된 최익대(崔益大)를 시조로 삼는다. 이는 조선 후기의 인물로,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가문이 독자적 본관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4. 본관, 관향

밀양(密陽)은 현재 경상남도에 속하나, 역사적으로는 경상북도 동남부와 밀접한 문화권을 이루었다. 삼한시대에는 변한(弁韓)에 속하였고, 신라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 757년 경덕왕 16년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성종 때 밀주(密州), 공양왕 때 밀양부(密陽府)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영남 내륙 교통의 요지이자 농업과 상업이 발달한 고장으로 성장하였다. 밀양은 예로부터 충효와 학문을 중시하는 지역적 전통이 강하였으며, 이러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밀양 최씨 역시 가문의 기반을 다졌다.


5. 시조, 중시조, 파조, 분파

① 시조

시조는 조선 숙종 연간의 무신 최익대(崔益大)이다. 그는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경종 즉위 후 왕세제 연잉군(후일의 영조)의 책봉과 대리청정을 지지하다가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 연루되어 화를 입고 은거하였다. 이후 영조 즉위로 사면되었다.

② 중시조

중시조는 3세손 최경륜(崔景崙)으로, 한성 성적에 본관을 밀양으로 기록함으로써 가문의 독립적 본관 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는 통훈대부에 증직되었으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③ 파조

가문 내 세거(世居)와 관직 진출을 통해 여러 갈래로 나뉘었으나, 대체로 경륜의 후손을 중심으로 한 계통이 주류를 이룬다. 장파와 계파로 구분되며, 일부는 경기 수리산 일대와 한성부 근처에 세거하였다.

④ 분파

후손들은 서울, 경기, 영남 일대에 산거하였다. 조선 후기 무과 급제자 최치갑(崔致甲)은 가선대부로 용양위 부호군과 창덕궁위장을 지내 가문을 빛냈다. 이러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규모 분파가 형성되었다.


6. 인구현황, 지역분포, 집성촌

① 인구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4,743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전체 최씨 인구에 비하면 적은 수이나, 본관의 독자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② 지역분포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경상남도 밀양시 및 인근 지역에 분포한다. 조선 후기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수도권과 경기 남부에 세거한 기록이 많다.

③ 집성촌

밀양 일대와 경기 수리산 인근에 세거지가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다만 대규모 집성촌보다는 소규모 산거 형태가 일반적이다.


7. 문화재, 문화유적

① 밀양 영남루

조선시대 대표 누각으로 밀양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밀양 최씨 선조들도 이 지역 문화권 속에서 성장하였다.

② 밀양향교

유교 교육의 중심지로, 지역 사족 가문들이 학문을 연마하던 공간이다. 밀양 최씨 후손들도 이곳에서 수학하며 향촌 질서를 이끌었다.

③ 수리산 은거지 관련 유적

최익대가 당쟁의 화를 피해 은거하였다고 전하는 지역으로, 가문의 절의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8. 조상의 얼을 본받아서

① 절의의 선택, 최익대

최익대(崔益大)는 당쟁이 극심하던 조선 후기, 권세의 향방에 따라 처신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분명히 하였다. 왕세제 연잉군의 정통성을 주장하다가 탄핵과 유배의 위험에 처하였으나,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벼슬보다 명분을 중히 여겼고, 화를 피해 은거하면서도 가문의 절의를 지켰다. 오늘날 후손은 그의 삶에서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도의와 용기를 배워야 한다.

② 본관을 세운 책임, 최경륜

최경륜(崔景崙)은 한성 성적에 본관을 밀양으로 명기함으로써 가문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이는 단순한 행정 기록이 아니라 후손의 뿌리를 분명히 하는 역사적 선택이었다. 그는 가문의 독립성과 자존을 세웠으며, 선조의 뜻을 계승하여 가통을 정리하였다. 후손들은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문의 역사적 책임을 이어가야 한다.

③ 무인의 기상, 최치갑

최치갑(崔致甲)은 헌종 7년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 부호군과 창덕궁위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궁궐 수위와 국방의 책임을 맡아 충성을 다하였다. 무인의 길은 단순한 무력이 아니라 나라와 임금을 향한 신의와 헌신의 표현이었다. 그의 삶은 실천하는 충의의 본보기이며, 후손들에게 책임과 용기의 의미를 일깨운다.

④ 향촌 사회의 모범

밀양 최씨 가문은 비록 대성은 아니었으나, 향촌 사회에서 학문과 예의를 중시하며 지역 공동체의 질서를 지켰다.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인재를 기르고, 가훈을 통해 절약과 청렴을 강조하였다. 가문의 규모가 작더라도 정신이 크면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후손에게 겸손과 성실의 가치를 일깨운다.

⑤ 역사 속의 자긍심

밀양 최씨는 거대한 세력을 이루지는 않았으나, 조선 후기 정치적 격랑 속에서 명분을 지키고 본관을 세운 가문이다.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며, 숫자보다 소중한 것은 전통이다. 후손은 가문의 역사를 되새기며 자신이 이어받은 이름의 무게를 인식해야 한다. 이는 곧 스스로를 단련하는 힘이 된다.


9. 상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https://blog.naver.com/hkpark1408/223035177380



11. English Summary

The Miryang Choe Clan (密陽 崔氏) is a Korean clan whose ancestral seat is Miryang, a historic city in the Yeongnam region. It is a branch of the broader Choe (崔) lineage, one of the oldest native Korean surnames tracing back to Sobeol-dori, a village chief recorded in the Samguk Sagi during the foundation era of Silla.

The founding ancestor of the Miryang Choe Clan is Choe Ik-dae (崔益大), a military official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o held the post of Jeolchung Janggun and served as Vice Commander of the Yongyangwi. During the intense factional strife between Noron and Soron political groups, he supported the legitimacy of Prince Yeoning (later King Yeongjo). As a result, he became embroiled in political persecution and lived in seclusion for a time. After Yeongjo’s accession, he was pardoned, and his descendants established Miryang as their official bon-gwan.

Choe Gyeong-ryun (崔景崙), regarded as the middle ancestor, formalized the clan’s identity by registering Miryang as the family’s ancestral seat in official records in the capital. His actions solidified the independent status of the clan within the broader Choe lineage.

Although relatively small in number, with approximately 4,743 members recorded in the 2015 census, the Miryang Choe Clan represents the Confucian virtues of loyalty, integrity, and moral courage. Descendants have lived mainly in Seoul, Gyeonggi Province, and the Miryang area. The clan’s historical narrative reflects resilience during political turmoil and a commitment to principled conduct rather than mere pursuit of power.

Today, the Miryang Choe Clan stands as a symbol of dignity rooted in ethical conviction. Its heritage reminds descendants that true nobility lies not in size or influence but in the steadfast preservation of honor and tradition.


12. 참고자료

① 나무위키의 최(성씨) 항목

② 위키백과의 밀양 최씨 항목

③ 밀양최씨계해보

④ 조선씨족통보

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3. 키워드(Keyword)

밀양최씨, 최익대, 최경륜, 최치갑, 밀양본관, 경주최씨분파, 영남사족, 조선후기무신, 한국성씨, 밀양가문, MiryangChoeClan, KoreanChoeClan, JoseonLine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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