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진주 형씨(晋州 邢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전통 성씨이다. 형씨의 한자는 형벌 형이 아닌 나라 이름에서 유래한 邢 자를 사용한다. 본관은 진주(晋州)로 단본이며, 세계(世系)는 고려시대부터 뚜렷하게 전한다.
시조는 중국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고구려 영류왕(榮留王)의 요청으로 팔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입국한 형옹(邢顒)이다. 그는 634년 고구려에 들어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되고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으며, 당나라의 문물과 유교 문화를 전하는 데 공헌하였다. 이후 남양(南陽)에 사향(賜鄕)되어 정착하였다.
고려 명종(明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13세손 형방(邢昉)을 일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며, 15세손 형공미(邢公美)가 충렬왕(忠烈王) 때 왜구 정벌에 공을 세워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진 이후 진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오늘날 진주 형씨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학문과 절의를 중시하는 가풍을 이어오며 한국사 속에서 묵묵히 자취를 남긴 성씨이다.
2. 언어별 성씨 표기방법
① 한글: 진주 형씨
② 한자: 晋州 邢氏
③ 영어: Jinju Hyeong Clan
④ 일어: チンジュ・ヒョン氏
⑤ 중국어(간자): 晋州 邢氏
⑥ 독일어: Jinju-Hyeong-Sippe
⑦ 프랑스어: Clan Hyeong de Jinju
3. 기원, 유래
형씨(邢氏)의 원류는 중국 주(周) 왕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공(周公)의 넷째 아들 정연(靖淵)이 형후(邢侯)에 봉해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형은 고대 중국의 제후국 이름으로, 국명이 곧 성씨가 되었다.
주공은 서주(西周) 시대의 정치가로 봉건제도를 정비하고 성왕(成王)을 보좌하여 주왕조 300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공자(孔子)가 이상적 정치가로 숭앙한 인물이 바로 주공이다. 이러한 사상적 전통은 훗날 형씨 가문의 학문적 기풍 형성에 상징적 뿌리가 되었다.
한국으로의 동래는 당 태종 정관 8년(634)에 이루어졌다. 형옹(邢顒)은 팔학사의 일원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유교 경전과 당나라 문화를 전파하였다. 이후 후손들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관직에 진출하여 학문과 무공으로 가문을 빛냈다.
4. 본관, 관향
진주(晋州)는 경상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으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강주(康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성종 14년(995)에 진주라는 명칭이 확정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진양도호부(晋陽都護府)로서 서부 경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진주 형씨는 15세손 형공미(邢公美)가 진양군에 봉해진 이후 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일부 후손이 전라남도 장흥에 정착하여 장흥 분파가 형성되었으나, 본관은 진주로 단일하다.
5. 시조, 중시조, 파조, 분파
① 시조
시조는 형옹(邢顒)이다. 당나라 한림 출신으로 고구려에 입국하여 학문과 문화를 전파하였다. 그의 동래는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동아시아 학문 교류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② 중시조
중시조는 고려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형병(邢昞)이다. 그는 850년 출생하였으며, 가문의 기반을 고려 관료 사회에 확립하였다.
③ 일세조와 진주 정착
13세손 형방(邢昉)은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그는 경남 진주 반성에 정착하여 후손들의 세거지를 마련하였다.
④ 분파
판사공파는 18세손 형군소(邢君紹)를 파조로 한다. 그는 문과 급제 후 평양윤과 삼도순찰사를 지냈으며 「동문선」에 부벽루운이 전한다.
병사공파는 18세손 형군철(邢君哲)을 파조로 한다. 그는 세종대 무과 급제 후 충청도 병마사를 지냈다.
장흥 분파는 19세손 형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6. 인구현황, 지역분포, 집성촌
① 인구
1985년 5,214명, 2000년 6,277명, 2015년 7,239명, 2021년 8,231명, 2023년 8,301명으로 점진적 증가 추세를 보인다. 한국 성씨 가운데 비교적 소수에 속한다.
② 지역분포
경상남도 진주시와 반성 일대, 전라남도 장흥군과 화순군, 충청남도 일부 지역에 분포한다.
③ 집성촌
진주시 반성면 일대가 대표적 세거지이며, 장흥군 남평 일대에도 후손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7. 문화재, 문화유적
① 진주 반성 세거지
형방(邢昉) 후손이 대대로 거주한 반성 지역은 가문의 역사적 중심지이다.
② 동문선 부벽루운
형군소(邢君紹)의 시문이 「동문선」에 전하여 문학적 전통을 상징한다.
③ 충절 관련 유적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형공미(邢公美)의 공적은 향토 사료에 전한다.
8. 조상의 얼을 본받아서
① 학문의 뿌리를 세운 형옹
형옹(邢顒)은 국경을 넘어 학문을 전한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학자의 본분을 지키며 고구려에 경학을 전파하였다. 벼슬의 영달보다 도의와 사명을 앞세운 그의 선택은 후손에게 학문은 권세의 도구가 아니라 인격 수양의 길임을 일깨운다. 진주 형씨의 정신은 바로 이 학문 존중과 문화 전승의 의지에서 출발한다.
② 관료 사회의 기틀을 닦은 형방
형방(邢昉)은 고려 명종 대 문하시중에 올라 국정을 보필하였다. 그는 지방에 정착하여 향리를 안정시키고 후손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중앙 정치와 지방 사회를 아우른 그의 삶은 책임과 균형의 미덕을 보여준다. 후손들은 공직에 임할 때 사사로움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③ 무공으로 나라를 지킨 형공미
왜구가 창궐하던 시기, 형공미(邢公美)는 도원수로서 바다를 지켰다. 그는 공으로 진양군에 봉해졌으나 교만하지 않았고, 백성과 병졸을 아끼는 장수였다. 그의 삶은 위기 속에서 빛나는 용기와 절제의 상징이다. 오늘날 후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지키는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④ 문장으로 이름을 남긴 형군소
형군소(邢君紹)는 문과 급제 후 삼도순찰사를 지내며 학문과 행정을 겸비하였다. 「동문선」에 전하는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시대 정신의 표현이다. 학문과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밝히는 지식인의 길을 보여준다. 이는 가문이 지향해 온 문풍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⑤ 충절을 지킨 형의빈
형의빈(邢義賓)은 옥중에서 일곱 차례 형문을 받으면서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신념을 지킨 그의 최후는 충절의 표상이다. 권력의 변동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는 자세야말로 진주 형씨가 이어온 정신적 유산이다.
9. 상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11. English Summary
The Jinju Hyeong Clan (晋州 邢氏) is a Korean clan whose ancestral seat is Jinju in South Gyeongsang Province. The surname Hyeong (邢) traces its legendary origin to the ancient state of Xing during the Zhou dynasty in China. The founding ancestor in Korea, Hyeong Ong (邢顒), entered Goguryeo in 634 as one of the Eight Scholars invited by King Yeongnyu. He contributed to the transmission of Confucian learning and Tang culture.
The lineage became firmly established during the Goryeo dynasty. Hyeong Bang (邢昉), a 13th-generation descendant, served as Munhasi-jung, the highest state councillor, under King Myeongjong and settled in Jinju. His descendant Hyeong Gongmi (邢公美) distinguished himself in suppressing Japanese pirates and was ennobled as Lord of Jinyang, after which Jinju became the clan’s official bon-gwan.
Although relatively small in number, the clan produced civil officials, military commanders, and scholars throughout Korean history. Branches such as the Pansa-gong and Byeongsa-gong lines developed in both Gyeongsang and Jeolla regions. As of 2023, the clan population stands at approximately 8,300 members.
The spirit of the Jinju Hyeong Clan is characterized by scholarship, loyalty, integrity, and public service. From cultural transmission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to military defense in late Goryeo and principled conduct in Joseon, the clan’s heritage reflects devotion to moral duty and communal responsibility.
12. 참고자료
① 나무위키의 진주 형씨 항목
② 위키백과의 진주 형씨 항목
③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④ 조선씨족통보
⑤ 진주 형씨 족보 및 향토사 자료
13. 키워드(Keyword)
진주형씨, 형옹, 형방, 형공미, 형군소, 형군철, 형의빈, 진주본관, 한국성씨, 고려문하시중, JinjuHyeongClan, KoreanHyeongSurname, Jinju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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